제주를 여러 번 다녀오다 보면 어느 순간 "이번엔 또 어디 가지?"라는 고민이 생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유명 관광지는 웬만큼 다 가봤고, 새로운 이유가 필요하던 참에 '스튜디오 지브리전 인 제주' 소식을 접했습니다. 일본 밖에서는 처음 열리는 지브리 공식 전시라는 말 한 마디가 저를 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게 만들었습니다.

왜 하필 제주였을까 — 배경과 선택
처음엔 의아했습니다. 지브리 하면 도쿄의 지브리미술관이나 나고야 지브리파크가 먼저 떠오르는데, 왜 일본 밖 첫 무대로 제주를 골랐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주동화마을의 사진과 현장 이야기를 찾아보니 이해가 됐습니다.
스튜디오 지브리의 공동 창립자이자 프로듀서인 스즈키 토시오는 개관식 자리에서 "지브리는 캐릭터만큼 배경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배경'이란 단순히 그림 속 풍경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지브리 작품의 배경은 숲, 바람, 돌, 물처럼 살아 있는 자연 그 자체이고, 그 자연이 캐릭터와 동등한 비중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그런 맥락에서 화산암과 곶자왈 숲이 공존하는 제주의 지형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연장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 섰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시가 열린 제주동화마을은 약 12만㎡ 규모의 자연친화형 공원입니다. 화산석과 숲, 꽃을 주제로 조성된 공간이라 '모노노케 히메'(1997)나 '이웃집 토토로'(1988)처럼 자연 생태계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의 분위기와 꽤 잘 맞아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실내 전시관을 하나 지어 캐릭터를 늘어놓은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입니다.
"지브리 팬이라면 일본에서 봐야 진짜"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제주의 자연환경이 전시의 일부가 되는 방식은, 도쿄나 나고야의 정제된 실내 공간과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이 더 낫다기보다는, 서로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고 보는 편이 맞겠지요.
- 일본 도쿄 지브리미술관, 나고야 지브리파크에 이어 세계 세 번째 공식 지브리 체험 공간
- 일본 밖 첫 전시이자 사실상 상설 전시관 형태로 향후 8년간 운영 예정
- 제주동화마을은 약 12만㎡ 규모의 자연친화형 공원 — 전시의 '배경' 자체가 작품의 일부
- 개관식에는 스즈키 토시오 프로듀서, 정욱 대원미디어 회장, 가수 성시경 등 참석
작품 속을 직접 걷는다는 것 — 공간 체험
이번 전시에서 가장 화제가 된 부분은 역시 공간 구현 방식입니다. 전시장 규모는 약 3,100㎡로, 단순히 포스터나 원화를 걸어두는 방식이 아니라 영상과 음향을 결합한 이머시브(Immersive) 전시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이머시브 전시란 관람객이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는' 형태의 전시를 말합니다. 체험의 밀도가 전혀 다릅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장면들이 실제 공간으로 옮겨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의 치히로 부모가 돼지로 변하는 음식 거리, 높이 약 5m로 솟아오른 '천공의 성 라퓨타'(1986)의 조형물,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까지 한 공간 안에 모여 있다니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실물 스케일 조형물을 '보는' 것과 그 옆을 '걷는' 것은 전혀 다른 감각이거든요.
특히 대형 고양이버스는 직접 타고 만져볼 수 있도록 설계됐고, 전시관과 카페를 잇는 숲길 곳곳에는 '모노노케 히메'의 고다마(나무 정령) 조형물이 배치됐습니다. 고다마란 일본 전통 신앙에서 나무에 깃든 정령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울창한 숲속 실제 나무들 사이에 놓임으로써 가장 지브리다운 연출을 완성했다고 생각합니다.
콘티(Continuity Sketch)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콘티란 애니메이션 제작 전 단계에서 장면의 구도, 동작, 대사를 손으로 그린 설계도로, 완성된 영상보다 오히려 작가의 날것 같은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바다가 들린다'(1993), '벼랑 위의 포뇨'(2008) 등의 콘티가 전시된다는 점은 단순 팬 서비스를 넘어, 지브리 작품의 제작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부분은 단순히 캐릭터를 좋아하는 팬이라도 예상보다 훨씬 깊이 빠져들 수 있는 요소입니다.
"이런 체험형 전시는 결국 인증샷 찍으러 가는 거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제 경험상 그건 절반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선 자체가 관람객을 등장인물의 시선으로 이야기 안에 집어넣도록 설계됐기 때문에, 사진만 찍다 나오기가 오히려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성수기에 사람이 몰리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솔직히 인정합니다.
제주 관광에 무엇이 달라지나 — 관광 전망
전시 개막 후 일주일 만에 약 2만4,000명이 방문했고 하루 평균 약 3,000명이 다녀간 것으로 집계됐습니다(출처: 중앙일보). 이 수치를 두고 "예상 범위 안이다"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읽었습니다. 전시 시작 첫 주에 3,000명/일을 기록했다는 건, 성수기가 본격화되면 관람 대기 자체가 여행 일정을 압박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주 관광 구조 측면에서도 이번 전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제주관광공사에 따르면 제주를 찾는 국내 관광객 수는 수년째 정체 혹은 감소 국면을 보이고 있으며,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한 콘텐츠 다양화가 과제로 꼽혀왔습니다(출처: 제주관광공사). 기존의 자연경관 중심 관광에서 한 발 나아가, 문화 콘텐츠로 방문 이유를 만드는 방향입니다. 이번 지브리 전시는 그 흐름에서 가장 강력한 카드 중 하나라고 봅니다.
공식 상품점 '도토리숲'에서는 돌하르방 토토로, 한라봉 토토로처럼 제주 한정 굿즈를 판매합니다. 제주 한정 굿즈(Limited Edition)란 해당 장소에서만 구매 가능한 제품을 뜻하는데, 이는 "굿즈 때문에라도 한 번 더 가야 한다"는 재방문 동기로 연결됩니다. 굿즈 전략이 관광 체류 시간과 소비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방식은 도쿄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이 수십 년간 증명해 온 공식이기도 합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제 눈에는 보입니다. 성수기 집중 관람으로 인한 쾌적한 감상의 어려움, 입장료와 부대 비용 부담,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할인 체계나 사전 예약 시스템의 보완 여지가 그것입니다. 전시의 완성도가 높을수록 관람 경험의 질을 지키기 위한 운영 설계도 함께 성숙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8년이라는 장기 운영 계획이 잡혀 있는 만큼, 시간이 지나며 이런 부분들이 개선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튜디오 지브리전 인 제주는 기간 한정 전시인가요, 상설인가요?
A. 사실상 상설 전시관 형태로 운영되며, 향후 8년간 지속될 예정입니다. "잠깐 열렸다 사라지는 팝업 전시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있는데, 이번 경우는 제주동화마을과의 장기 계약을 전제로 구성된 전시라 조급하게 방문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초기 성수기 혼잡은 감안하는 편이 좋습니다.
Q. 지브리파크나 지브리미술관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A. 도쿄 지브리미술관과 나고야 지브리파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철학이 직접 반영된 원조 공간이라는 상징성이 있습니다. 반면 제주 전시는 제주의 실제 자연을 배경으로 삼아 이머시브 체험에 특화된 구성으로 차별화됩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는 목적과 취향에 따라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고 보는 시각이 맞을 것 같습니다.
Q. 아이와 함께 가도 괜찮은 전시인가요?
A. 고양이버스에 직접 올라타거나 조형물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 아이와 함께 방문하기에도 적합한 구성입니다. 다만 입장료와 굿즈 구매 비용 등 부대 지출을 감안하면 가족 단위 방문 시 비용 부담이 생길 수 있고, 가족 할인이나 예약 시스템의 세부 운영 방식은 방문 전 공식 채널에서 미리 확인하는 것을 권합니다.
Q. 제주 한정 굿즈는 어디서 살 수 있나요?
A. 전시장 내 공식 상품점 '도토리숲'에서만 구매 가능합니다. 돌하르방 토토로, 한라봉 토토로처럼 제주의 상징을 지브리 캐릭터와 결합한 한정판 굿즈는 온라인이나 타 지역에서는 구하기 어렵습니다. "굿즈는 나중에 온라인으로 사면 되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주 한정이라는 조건 자체가 재방문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잘 설계된 상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
제주를 몇 번이나 다녀왔는데도 이번 전시 소식 하나로 다시 비행기 검색창을 열게 됐다는 게, 저한테는 그 자체로 꽤 강력한 신호였습니다. 지브리가 배경을 캐릭터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철학이, 제주를 선택한 이유와 정확히 맞물린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단순한 라이선스 전시와는 결이 다르다고 봅니다.
물론 성수기 혼잡이나 비용 부담처럼 아쉬운 지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8년이라는 긴 운영 기간이 보장된 만큼, 서두르지 않고 비수기를 노려 여유 있게 방문하는 쪽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것입니다. 지브리를 좋아했던 분이라면, 제주의 숲속에서 고다마와 마주하는 경험은 단순한 관광을 넘어 작품과 재회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제 경험상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